다정함이라기보다는, 자상함으로 닿았어요.
동생 바보 격이를 보면서,
격이와 닿는 시간들에는
자주 감동받고 틈틈이 힐링이 되어요.
지닌 섬세함과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 씀씀이로 말이에요.
손에 꼽게, 친오빠를 바꾸고 싶다고 말하는
몇몇의 사람이 있는데,
진짜 친오빠 나이랑 비슷한 삼오님으로 인해서야,
알아채게 되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삼오님과 대화로 채워졌던 어느 지난날,
자신의 고생스러움은 크게 이야기 않고,
[비교로 동생이 고생스러웠지] 하는 말들이
뭔가 위로가 많이 되었달까요?
아이들이 셋 이상 일 때, 꽤 많은 경우
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이 여러모로
특이하거나 특별한 취급을 받는 패턴을
많이 봐와서
나는 고생스러워도 나와 비슷하지만 다른
세상 어느 누군가는
덜 고생스러울 수 있었음을
듣는 것만으로도
안도감과 편안함 어딘가에 머물러서
저도 쉬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불가능이 무력함이 되니까,
따뜻한 가능성
그 경우를 보고 듣게 되는 게,
힘이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비슷함